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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회사 생활기 (1)

by 푸르미로 2023.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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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일들이 이제 마무리가 되어간다. 정확히는 일이 마무리되는 게 아니고 내가 자리를 옮긴다.  지난 1년 반 동안 나는 새벽 출근과 이어지는 야간 근무 그리고 주말 출근에도 해결할 수 없는 과도한 업무와, 그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조차 없는 낮은 권한 그리고 신생 조직의 무체계함 속에서 허둥댔다. 

업무에 치여 허둥대면서 나는 패배주의와 무기력감에 시달렸으며, 자존감은 끝없이 추락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현재의 나를 부정했고 미워했다. 정말 내가 문제였던 것일까? 아니면 도대체 뭐가 문제였고 어떻게 해결해야 했던 것일까? 

나는 조직의 관리자이면서도 실무자였다. 30명의 기술직원들은 모두 수평적 구조로 나에게서 업무지시를 받고 나는 30명으로부터 다시 업무 보고를 받았다. 팀장이나 파트장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첫 번째 문제다.

기술직원들은 본인 고유 영역의 업무만 수행한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한 기술직원의 복지와 현장 업무 지원을 위해서는 다양한 행정업무들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다시 강조하지만, 그들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굉장히 이상하게도 관리자인 내가 그들을 위해 행정업무를 대리로 처리한다. 단 한 명의 지원 인력도 없이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두 번째 문제다. 

상기한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사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으며 눈에 훤히 보인다. 조직의 체계를 갖출 수 있도록 바꿔나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왜냐고? 나의 직속 상사는 이러한 체제를 유지하길 원했다. 나만 이 상황을 무한히 감내하고 희생하면, 기술직원들로부터 최대한 성과를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말은 이렇게 한다.

"승진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남들과 똑같이 해서 어떻게 승진하니?"

너무나도 명쾌해서 마치 정답인 것 같다. 승진을 앞둔 나는 더 이상 반박을 할 수 없다. 거진 노예나 다름없다. 불합리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이러한 방식이 성과를 빠르게 낼 수 있을지언정 장기적으로는 무체계함 속에 여기저기 구멍이 나며 무너질 수밖에 없다. 당장 내가 없어지면 조직 자체가 휘청일 것이며 단언컨대 몇 달간은 혼란에 빠질 것임을 확신한다.

하지만 모두가 머릿속으로 상상한 것처럼 몇 년 뒤에 조직이 망하든 무너지든 어떻게 되든 간에 그것은 그들의 알바가 아니다. 지금 당장이 중요하니까. 내가 있을 때 성과가 나면 되고 내가 있을 때만 빛나면 되는 것이니까.

아무튼 그 직속상사는 이제 다른 부서로 떠났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상사 아래에서 또다시 투쟁하며 조직개편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조직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중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순진하고 어리석다. 한 달만 있으면 나도 다른 부서로 이동하는데 말이다. 내가 지금하고 있는 노력들은 조직의 혼선을 막고 안정을 도모하겠지만 나의 가치는 퇴색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뒤에 오는 사람들을 이러한 개편된 체계가 당연함으로 알 것이며 그 체계 안에서 그들만 빛날 것이다.

'옳은 일은 마땅히 해야 한다'라고 생각해 오면 살아왔던 나는, 내가 살아온 삶과 가치관이 옳은 것인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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